국민의 수준


공지사항

특별히 공지할만한 사항이 없긴 하지만, 아래 내용은 알아 두시면 좋을 듯 하네요.



1. 제가 여기에 작성하는 글은 기본적으로 저 자신을 위해서 쓴 글입니다. 

   기왕이면 다른 분들도 읽어 주시면 좋긴 하지만, 아직 읽을 만한 글을 쓸 내공은 없는 듯 하네요.

2. 제가 쓴 글이던, 다른 분이 단 댓글/답글이던 삭제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맞춤법이나 사소한 오류를 제외하면 추신을 달지언정 수정하지 않고 두고두고 반성할 예정입니다.

3. 원칙적으로 모든 댓글에 답글을 달 예정이긴 합니다만,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는 댓글은 예외입니다.

4. 욕설은 환영하지 않지만, 굳이 금지할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자신의 댓글에 달린 답글에 욕설이 있음을 불편해하시는 분이 있는 경우에는 예외입니다.

   (필요하면 이 경우만 예외적으로 삭제할 수도 있습니다.)

5. 참고로 저는 정치적으로는 보수이고, 경제적으로는 중도(적당한 규제가 필요하다)적인 입장입니다.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보수의 의미는 소넷님의 정의와 같습니다.  http://sonnet.egloos.com/3634097#none

러시아의 외교적 목표와 혁명성에 대하여

현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이와 관련된 저의 이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어 잡글을 하나 써 보기로 했습니다.

 

일단 러시아가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한 조지아 전쟁(남오세티아 전쟁)을 마치고 발표한

러시아의 공식적인 입장은 당시 대통령인 메드베데프(푸틴과 총리직을 교대하는 그 사람)의 이름을 따서

메드베데프 독트린이라고 불립니다.
 
(자세한 내용은 제가 이 분야의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스승님의 동의는 얻은 적이 없지만) 소넷님의  http://sonnet.egloos.com/4018308 이 글에 있고,
이에 대한 오르카님의 반론 아닌 반론과 http://note100.egloos.com/4774911
다시 이에 대한 소넷님의 재반론 http://sonnet.egloos.com/4019597 이 있으니 관심있으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제 식으로 거칠게 요약하면 메드베데프 독트린은
러시아는 예전의 레드 드래곤 급의 신화적 존재는 아니지만,
자기 나와바리 정도는 지킬 수 있는 백곰이고,
그런 러시아가 가장 신경쓰는 인접국인 우크라이나 등등은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구체적으로 현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러시아의 입장은
키예프 시위대가 기존 대통령을 쫓아내기 하루 전에 체결되었던 2. 21.자 합의를 준수하라는 것인데,
 
이를 역시 거칠게 요약하면, 일단 우크라이나의 치안 등을 안정시키고,
총선으로 현 상황을 반영하는 거국일치 내각을 구성한 다음
개헌을 한 다음 대선을 해서 대통령을 새로 뽑되,
그 전까지는 기존 대통령을 형식적으로라도 앉혀 놓자는 것입니다.
( 자세한 내용은 http://sonnet.egloos.com/4859117 이 글을 참고하세요.)
 
그리고 이게 무산된 후 러시아의 입장은
여전히 기존 합의의 이행을 강조하면서, 상황을 안정시키는 역할을 러시아군에 맡기자는 것입니다.
(역시 자세한 내용은 http://sonnet.egloos.com/4859325 )
 
이후 푸틴은 3. 3. 기자회견으로 자신의 입장을 밝혔는데,
다시 한 번 거칠게 요약하면 합법적으로 우크라이나의 정권이 교체된다면 자신은 이에 따를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친러시아적인 지방정부의 탄생을 가능하게 하는) 개헌이 전제되어야 하며,
누가 되었든 구체적인 합의를 위한 협상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역시나 자세한 내용은 http://sonnet.egloos.com/4860274)
 
이상에서 확인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이
현 우크라이나를 장악한 키예프 정권에 대한 서유럽의 지지는
러시아 입장에서 보면 이미 공표한 자신의 핵심이익에 대한 정면도전입니다.
 
또한 현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러시아가 필요하다면 군사적 충돌도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누군가를 기다리지 않고 자신의 의사에 따라 행동하겠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있는 것은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갑작스러운 사태가 아니라
러시아가 정신을 차리고 안정된 이후부터 꾸준하게 세계를 향해서 공표해 온 입장이라는 거죠.
 
따라서 우크라이나의 미래에 아무런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지 않은 저 같은 사람이 보기에,
지금 서유럽이나 키예프 정권은 당연히 예상되는 문제에 대하여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무척이나 어설픈 아마추어 집단에 불과합니다.
(실제로 푸틴이 칼을 뽑아들었는데, 서유럽은 이를 예상하지 못하고 바게트를 가지고 싸우러 나갔다는 자평도 있다고 합니다)
제게 친숙한 예라면 카이사르 암살에 성공한 직후의 브루투스 일파라고나 할까요.
 
이후 현재까지 푸틴의 행보는
키예프 정권이 자신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상 막연히 기다릴 생각은 없고,
자신이 생각하는 차선책(크림반도의 러시아 편입, 동우크라이나의 분리독립)을 신속하게 실행에 옯기고 있는바,
이 또한 기존에 공표한 메드베데프 독트린에 입각한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논쟁 주제인 이제까지 살펴본 러시아의 입장을 2차대전 직전의 독일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냐,
즉 러시아가 과연 현 국제체제에 도전하여 평화를 해치는 혁명적인 국가이냐는 문제로 돌아가면,
저는 아래와 같이 두 가지 이유에서 현 러시아와 2차대전 직전의 독일과는 전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유사성=혁명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에 대해서는 http://sonnet.egloos.com/4118648 이 글을 참조하시고,
 요약하면  체제 내에서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려는 국가와 체제 자체를 엎으려는 혁명적인 국가는 구별해서 대처해야 하는데,
 히틀러는 후자의 국가였음에도 뮌헨회담에서 영, 프는 독일을 전자로 오해해서 실패했다는 것입니다)
 
먼저, 이제까지 살펴본 바와 같이, 러시아는 일관되게 제한적이고 분명한 목표를 천명하고 이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고 있을 뿐,
범세계적인 혁명적 주장을 하거나 그러한 행태를 보이고 있지 아니합니다.
따라서 러시아는 분명 예측가능한 존재이고,
이쪽에서 그럴 의지가 있다면 많은 피를 흘리지 않고도 충분히 설득가능한 존재로 보인다는 겁니다.
 
두번째로 체제와 이에 저항하는 국가의 상대적 국력을 고려했을 때,
독일과 러시아는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2차대전 직전에 유럽을 지배하던 베르사유 체제를 지지하던 국가는
영국, 프랑스, 폴란드 (잘해야 벨기에, 기회주의적인 이탈리아) +@ 정도에 불과하였는데,
독일이 자신들이 추구하던 체제 내 목표인 독일어 사용자의 통합을 달성한 이후의 국력은
최소한 유럽대륙 내에서는 지지국들이 최선을 다해야 독일이 약간의 열세라고 평가될 정도였죠.
따라서 독일은 군사적 모험을 시도했고 아시다시피 2차 산업혁명을 반영한 군사혁명의 도움으로 가볍게 유럽을 재패했습니다.
 
반면 현 체제의 알파와 오메가인 미국은 그야말로 압도적인 군사력/경제력을 과시하고 있으나,
위에서 인용한 오르카님의 글에서 언급되지만 러시아의 군사비는 미국의 7%에 불과하고,
GDP도 9%에 불과한 지역강국에 불과하고,
이보다도 경제적으로 취약한 러시아 인접국가를 병합해도 그 비율이 의미있게 호전될 가능성은 낮습니다.
 
요컨대 러시아는 혁명적 목표가 있어도 이를 추구/실현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물론 많은 분들이 지적하는 중국의 부상 결과 다극체제가 실현된다면, 중국에 러시아가 편승하여 혁명세력이 될 가능성도 있겠지만, 그건 일단 지금의 일은 아니고 주제도 다르니 현 러시아의 분석에 도움되는 정보는 아니라는 점만 지적하고 넘어가겠습니다)
 
따라서 현 러시아의 행태는 굳이 따지면 1차대전 이전의 범슬라브주의를 표명하던 러시아 제국에 가깝다고 보이고,
 이에 상응하는 범게르만주의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존재하지도 아니하므로,
현 사태는 평화적으로 (다소의 잡음만 일으키면서) 해결될 것으로 보이니,
이를 가지고 히틀러의 재래라던가, 미국과 서유럽이 군사적인 방안을 포함해서 강력하게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현 상황에 부합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혹시나 싶어서 첨언하면, 저는 러시아의 현 목표나 행동을 지지하지도 반대하지도 않습니다(굳이 따진다면 제국주의적 행태라는 이유로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2차대전기 미군 전차대대 야전교범

최근 구글링으로 미군 전차대대 야전교범을 구했는데,

혹시 필요하신 분들은 받아가시기 바랍니다.

42년판과 44년판 둘이 있는데, 듣기로는 42년판은 그냥 뇌내망상에 가깝고, 44년판은 실전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라고 합니다.

짬날때마다 검토해서 양자의 차이를 포스팅해볼 생각이 있긴 합니다만,

부족한 영어실력과 생업의 압박을 생각하면 올해 내로 가능할지 의문스러우니,

능력자분들께서 대신 해주시면 무진장 고마울 듯 합니다. ^^


2차대전기 미군의 탱크 디스토리어 개념에 대한 평가

레슬리 맥네어 중장과 미국의 대전차 자주포 부대

오르카님께서 댓글에 언급하신 'Seek, strike, and destroy 로 구글링해서 피디에프 파일 검색하시면 (발견할 수 있는) 90 페이지 정도 되는 논문'을 저도 찾아서 대충대충 읽다보니 역시나 좋은 내용이어서 6페이지 분량의 결론부분만 번역해 보았는데, 번역해놓고 보니 80년대의 상황에서 TD를 평가한 내용이 주여서, 별 도움이 될지는 의문스럽습니다.
어쨌든 번역한다고 고생한게 억울해서 보내드리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네요.

===================================================================================================================

The tank destroyer concept, initiated by George C. Marshall, nurtured by Lesley J. McNair, and implemented by Andrew D. Bruce, was the U.S. Army’s response to the revolution in warfare known as the blitzkrieg. It prescribed massed antitank elements, high-mobility units and vehicles, and high-velocity gunfire as the antidotes that would defeat massed tanks. The historian of the Tank Destroyer Center, writing in 1945, claimed that “tank destroyer doctrine as conceived and developed by Tank Destroyer Center in 1942 was so basically right in its vision and prescience that it stood all tests of combat missions.“ However, as the foregoing chapters have demonstrated, the tank destroyer concept was never fully realized in combat, and, in fact, the successes attained by tank destroyer units in battle came about despite tank destroyer doctrine, not because of it.


조지 C. 마샬에 의해 시작되고, 레슬리 j.멕네어에 의해 육성되어, 앤드류 D. 브루스에 의해 구현된 탱크 디스토리어(이하 TD)개념은 전격전으로 알려진 전쟁의 혁명에 대한 미군의 반응이었다. 그것은 기동성이 높고 차량화되었으며, 포구초속이 빠른 화력을 가진 대전차무기를 집중시켜 집중된 전차를 격퇴시키는 해독제로 처방하겠다는 것이었다. 1945년에 쓰여진 TD센터(이하 TDC)의 역사는 "1942년경 TDC에 의하여 고안되고 발전된 TD 교리는 전투실험으로 뒷받침되는 (당시의) 예견에 비추어 볼 때 기본적으로 옳았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앞서의 장들에서 밝힌 바와 같이, TD개념은 실제로는 전투에서 완전하게 실현된 사실이 없고, 사실 전쟁에서 TD가 이룬 성공은  TD교리 덕분이 아니라, 그 교리를 무시함으로써 달성되었다.


In truth, tank destroyer doctrine was a fundamentally flawed set of principles. Today, the US. Army utilizes a methodical process for the development of new programs known as the Concept Based Requirements System (CBRS). Although no such process existed in 1942, by using CBRS as a model, one can identify the inconsistencies that attended the development of the tank destroyer concept.


사실상, TD교리는 근본적으로 결함이 있는 원칙들을 모은 것이었다. 오늘날 미군은 새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할 때, 요구사항에 기반을 둔 개념시스템(CBRS)이라고 알려진 체계적인 프로세스를 활용한다. 그런 프로세스가 1942년경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CBRS를 모델로 사용하면 TD개념의 개발에 수반된 모순을 인식할 수 있다.  


In simplified form, CBRS consists of three major developmental stages. In the first stage, the Army identifies its mission and the opposition that the enemy can be expected to offer, with full consideration being given to past experience and to technological advances plotted for the future. Stage two involves translating that Army mission into specific battlefield and service functions to be performed by the various branches. The third stage consists of the simultaneous and integrated development of the doctrines, force structures, equipment, and training programs necessary for executing the battlefield functions that will fulfill the Army’s mission. Thus, CBRS ensures that the Army’s doctrines are attuned to the mission, the threat, and to each other. By contrast, the development of the tank destroyer concept resulted in a product that was inapplicable to the battlefield and was poorly synchronized with the other arms.


단순하게 정리하면, CBRS는 3개의 주요한 개발 단계로 구성된다. 첫번째 단계에서, 군은 임무와 적의 대응을 인식하는데, 적의 대응은 과거의 경험과 미래에 계획된 기술적 발전에서 얻어진 인식을 최대한 활용하여 예측되었다. 두번째 단계는 특정 전장과 다양한 부서에서 수행될 기능을 고려하여 군의 임무를 해석하는 것이다. 세번째 단계는 군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한 전장의 기능을 실행하기 위하여 필요한 교리, 전력구조, 장비, 교육프로그램을 동시에 통합적으로 개발하는 것이다. 따라서 CBRS는 군의 교리가 임무와 위협 및 양자 모두에 적절히 대응되는 것을 확실하게 한다. 반면, TD개념은 개발과정에서 전장에 적용될 수 없고, 다른 무기들과도 제대로 조화되지 않은 결과를 내놓았다.


In terms of the CBRS model, the tank destroyer’s defects originated in stage one, with the identification of mission, threat, and technological trends. The U.S. Army’s mission in World War II was overwhelmingly offensive in nature, but the very existence of a major antitank program implied a war in which the enemy held the initiative. Logically, this suggested that if the Army successfully pursued its mission, the tank destroyers would have little to do, and if the tank destroyers were fully engaged, the Army as a whole would be failing in its mission. In addition, the enemy threat was viewed primarily in terms of the blitzkrieg, even though the Germans would be in the strategic defensive by the time American troops encountered them in force. Tactically, the formulators of the tank destroyer concept acted on the assumption that the enemy fought in all-tank masses. As has been shown, German panzer doctrine actually encompassed all arms. Moreover, only 10 percent of the German Army was ever mechanized. Another fundamental lapse occurred in the realm of technological forecasting. Due in part to the lack of a central research and development agency, the Army completely failed to anticipate the advances in tank armor and armament that would occur as the war continued.


CBRS 모델의 측면에서 볼 때, TD(개념)의 결함은 제1단계, 즉 임무, 위협, 기술발전 동향의 인식단계에서 기인한다. 2차대전 중 미군의 임무는 본질적으로 압도적인 공격상황을 전제하였으나, 주된 대전차 프로그램의 존재 그 자체는 적이 주도권을 쥐는 전쟁을 암시한다. 논리적으로 이것은 군이 성공적으로 임무를 추구한다면 TD는 할일이 거의 없게 되고, TD가 전력으로 전투에 개입한다면 군 전체가 그 임무에 실패하였다는 것을 시사한다. 추가로, 미군이 실제로 독일과 싸우게 되었을 때 독일은 전략적으로 방어상황이었음에도, 적의 위협은 주로 전격전이라는 면에서 고려되었다. 전술적으로 TD개념의 고안자들은 적이 전적으로 전차로 구성되어 있다는 전제 하에 작업을 하였다. 관찰된 바에 의하면 실제 독일의 전차교리는 모든 무기를 포함하고 있었다. 또한 독일군의 단지 10%만 기계화되어 있었다. 또다른 근본적인 실수는 기술적인 예측분야에서 일어났다. (부분적으로는) 중앙(집중화된) 연구개발기관의 결여로 인하여, 군은 계속되는 전쟁에서 이루어진 전차장갑과 무기의 발전을 예측하는데 완전히 실패했다.


Given the misconceptions relating to the identification of mission, threat, and technological trends that occurred as part of the evolution of the tank destroyer, it follows logically that the development of battlefield functions would be flawed. Owing to the branch rivalries and obstructionism within the Army, antitank functions were not integrated into the activities of the existing arms but were instead assigned to the domain of a new tank destroyer quasi-arm. This encouraged the older arms to ignore the possibility that they might play a role in antitank combat. Inasmuch as the armored threat had been identified solely in terms of massed tanks, the new tank destroyer arm defined its battlefield function simply as that of stopping the tank-a rather narrow, technical task. The defeat of combined arms mechanized forces, which is a different matter altogether, was never perceived to be a tank destroyer function.


TD(개념)의 발전과정에서 발생한 임무, 위협, 기술발전 경향의 인식과 관련된 오해로 말미암아, 전장기능 개발의 결함이 논리적으로 따라왔다. 군의 부서간 경쟁심리와 의사방해 때문에 대전차 기능은 기존무기의 역할을 통합하는 대신 새로운 TD라는 반쯤 개발된(?) 무기의 전담영역으로 배정되었다. 이로 인하여 오래된 무기들(을 관할하는 부서)이 자신들이 대전차 전투에서 일정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가능성을 무시하도록 권장되었다. 장갑화된 무기들의 위협이 대량의 전차라는 측면에서만 인식되었다는 점을 고려하여 새로운 TD라는 무기의 전장기능은 전차를 막는 한정되고 기술적인 업무로 단순하게 정의되었다. 제병합동기계화군을 격퇴한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로서 TD의 기능으로는 인식되지 않았다.


According to the CBRS paradigm, the final stages in developing the tank destroyer concept should have been the coordinated, simultaneous manifestation of force structures, equipment, and doctrine. In the case of tank destroyer development, however, the press of time and the bureaucratic nature of the Army fragmented these efforts among several agencies, but once undertaken, the tasks were at least addressed quickly. But due to the erroneous assumptions already built into the overarching tank destroyer concept, force structuring, doctrine formulation, and weapons development could not help but go astray.


CBRS 패러다임에 의하면, TD개념을 개발하는 마지막 단계에서 전력구조, 장비, 교리가 동조되어 동시에 나타나야 한다. 그러나 TD(개념) 개발의 경우에는, 시간의 압박과 군의 관료적 속성에 의하여 여러 기관들 사이에 (동조에 관한) 노력이 이루어질 수 없었으나 적어도 업무는 일단 착수되면 빠르게 해결되기는 하였다. 그러나 대단히 중요한 TD개념에 관련되어 이미 이루어진 잘못된 가정때문에 전력구조 편성, 교리 공식화, 무기 개발은 모두 정도(正道)에서 벗어날 수 밖에 없었다.  


The first task accomplished was the creation of a force structure. The tank destroyer battalion was essentially a single-arm antitank organization. Some tank destroyer advocates have suggested that the tank destroyer battalion was actually a precedent-setting combined arms team, but this was not the case. The tank destroyer battalion possessed the equivalent of only one infantry company (distributed among nine security sections) to support three tank destroyer companies, and it controlled no general purpose artillery. By contrast, the 1943 armored division, which was, indeed, a balanced, combined arms force, had the resources to pair up an infantry company and a howitzer battery to each tank company. The tank destroyer battalion 69 was a single-arm force by intent because the asumption had already been made that the tank destroyer’s function was a narrow one-the destruction of unsupported tanks.


첫번째로 수행된 과제는 조직구조의 편성이었다. TD대대는 본질적으로 대전차무기만의 조직이었다. 일부 TD 옹호자들은 TD대대를 실질적으로 제병협동팀의 선례로 만들자고 제안하였으나, 그렇게 되지는 못하였다. TD대대는 3개의 TD 중대를 지원하는 (9개의 경비반으로 분산되는) 오직 한개의 보병중대만 보유하였고, 일반적인 목적의 포는 전혀 통제하지 않았다. 반면, 1943형 기갑사단은 진정으로 균형잡힌 제병협동부대였고, 각 전차중대마다 하나의 보병중대와 곡사포포대가 지원되었다. TD의 기능은 지원을 받지 못하는 전차들을 파괴하는 단 하나일 뿐이라는 기존의 가정때문에 69개의 TD대대는 의도적으로 단일한 무기만으로 구성되었다.


The same assumption shaped the writing of doctrine. FM 18-5 (1942) exhorted the single-arm tank destroyer elements to defeat the single-arm threat through “offensive action” and “semi-independent” operations. The formula for potential tragedy was thus laid, for the real enemy was a master of combined arms warfare, not a single-arm threat. Experience in battle quickly showed that tank destroyers were, in reality, highly dependent on other arms for support, and that “offensive action” for them was often suicidal. The Tank Destroyer Center learned of these battlefield findings through the reports of AGF observers and incorporated the lessons of combat in the 1944 edition of FM 18-5 This edition emphasized cooperation with other arms and made it clear that tank destroyer action was essentially defensive in nature, However, the gap between experience and doctrine never completely closed. FM 18-5 (1944) perpetuated the notion of massed, mobile tank destroyers but at the same time advocated closer coordination with the other arms, a policy that implied some degree of dispersal, Predictably, commanders in the field rectified this contradiction by quietly abandoning the theory of massing tank destroyer forces.


동일한 가정이 교리의 작성도 결정하였다. 1942년의 (TD에 대한) 야전교범 18-5은 공격적인 행동과 반독립적인 작전을 통하여 단일병과의 위협을 물리치기 위한 단일병과로 된 TD를 권고하였다. 잠재적인 비극의 공식대로 실제 적은 단일병과의 위협이 아니라 제병협동전의 달인이었다. 실전에서의 경험은 실제로 TD는 다른 병기들의 지원에 크게 의존하고, 공격적인 행동은 종종 자살로 귀결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TDC가 AGF의 관찰자들의 보고서를 통하여 이러한 전장에서의 교훈을 알게 되자, 야전교범 18-5의 1944판에서 다른 병과와의 협동 및 TD의 행동은 본질적으로 방어적이어야 함을 강조하였으나, 경험과 교리 사이의 간격은 완벽하게는 메워지지 않았다. 야전교범 18-5(1944판)는 기동성이 있는 TD의 집중이라는 개념을 존속시킴과 동시에 어느 정도의 분산을 암시하는 정책인 다른 병과와의 긴밀한 협동을 옹호하였고, 예상대로 야전지휘관들은 집중된 TD부대라는 이론을 조용히 포기하는 방식으로 모순을 시정하였다.


Finally, the failure to forecast technological advances early in the development of the tank destroyer concept resulted ultimately in the equipping of tank destroyer units with inadequate weapons. Neither the Tank Destroyer Center, nor AGF, nor the Ordnance Department ever fully appreciated the necessity of designing weapons for the future, not the present. Tank destroyer weapons designed in 1942 were largely unchanged in 1944, despite the fact that the Germans engaged in a furious arms race with the Soviets during the same period. However, the inadequacy of equipment was not a fatal blow to the tank destroyer concept. Even the finest weaponry would not have compensated for the conceptual and doctrinal flaws deeply embodied in the tank destroyer program. As evidence, witness the fact that the advent of the well-armed M-36 did little to reverse the abandonment af tank destroyer doctrine in the field. On the other hand, U.S. tanks were even less well armed than the tank destroyers, but because the armored
establishment possessed a sound doctrine by 1944, armored formations succeeded on the battlefield in spite of their equipment. The historical evidence does not show that the tank destroyers tried to implement their doctrine but failed for the lack of proper equipment. Rather, it is clear that tank destroyer doctrine was never really executed because it rested on false premises and thus had little application on the battlefield.


마지막으로, TD개념 개발 초기에 기술적인 진보를 예측하는데 실패한 결과 궁극적으로 TD부대들은 부적절한 무기를 장비하게 되었다. TDC와 AGF, 병기국 모두 현재가 아니라 미래를 위한 무기 설계의 필요성을 충분히 평가하지 않았다. 1942경에 설계된 TD 무기들은 독일이 같은 기간동안 소련과의 격렬한 군비경쟁에 참여하였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1944경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다. 그러나 장비의 부적절성은 TD개념에 치명적인 타격은 아니었다. 최상의 무기조차 TD프로그램에 깊숙하게 체화된 개념적이고 교리적인 하자를 보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증거로, 잘 무장된 M-36의 출현도 야전에서 TD교리가 포기되는 것을 반전시킬 수 없었다. 반면에, 미국의 전차들은 TD보다 주포화력이 약했음에도 불구하고 1944경 건전한 교리 덕분에 전장에서 성공할 수 있었다. 역사적인 증거는 TD가 교리를 시행하려다가 적절한 장비가 없어 실패하는 것을 보여주지 못한다. 오히려, TD 교리는 잘못된 전제를 가지고 있어 전장에 거의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실제로 시행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 수 있다.


For all of the conceptual blunders and doctrinal inadequacies that plagued the tank destroyer effort, the basic idea of massing antitank elements to defeat enemy armor was not necessarily disproven in World War II and did not die out completely with the inactivation of the tank destroyer force. Although the postwar Army officially adopted the premise advanced by General Devers that the best antitank weapon was the tank itself, tank destroyer advocates continued to insist that, doctrinally and psychologically, tanks and tank destroyers were not interchangeable.5 Technological advances made in recent years hold out renewed promise for the revival of certain tank destroyer concepts. Antitank guided missiles might offer the sure-kill capability that a latter-day tank destroyer would require, and they would, in portable form, provide the infantry with a degree of antitank self-sufficiency that would permit the massing of tank destroyer elements. Another modern antitank system, the attack helicopter, combines the firepower of the guided missile with a degree of mobility that the World War II tank destroyer could never approximate. The attack helicopter companies and battalions found within the divisions and corps of today’s Army are the closest doctrinal heirs to the World War II tank destroyer concept.


이상과 같은 TD의 노력을 괴롭힌 개념상의 어리석은 실수와 교리의 부적절성에 비해 적의 기갑차량을 집결된 대전차부대로 격퇴한다는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2차대전중에 필연적으로 틀렸음이 입증되지 않았고, TD병과가 사라졌음에도 완벽하게 죽어 없어지지 않았다. 전후 미군이 공식적으로 최고의 대전차병기는 전차라는 데버스 장군의 전제를 채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TD 옹호자들은 여전히 교리상으로나 심리적으로나 전차와 TD는 대체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최근 이루어진 기술적인 진보는 어느정도의 TD개념의 부활에 대한 새로운 약속을 드러냈다. 대전차유도미사일이 현대판 TD가 필요로 하는 확실하게 전차를 파괴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해 준다면, 휴대가능한 타입의 대전차유도미사일은 보병이 어느 정도 대전차무기를 자급자족할 수 있게 하여, TD부대를 집중시킬 수 있도록 한다. 또다른 현대의 대전차시스템인 공격헬기는 유도미사일의 화력과 2차대전기의 TD가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의 기동성을 결합시켰다. 현재 미군의 사단이나 군단에 배속된 공격헬기중대와 대대는 2차대전 당시의 TD 개념의 가장 가까운 교리상의 후계자이다.


Variations on the tank destroyer theme have met with considerable success in a number of foreign armies. During and after World War II, both the Germans and the Soviets produced large numbers of turretless tank hunter-assault guns, based on existing tank designs, that combined the virtues of high firepower, effective armor, and ease of production. (These fighting vehicles are sometimes called “tank destroyers,‘” but they differed greatly from the American tank destroyer both in design and in doctrine.) The German and Soviet tank hunters were no more mobile than the tanks they were derived from, but they could stand and fight it out with enemy tanks, something that American tank destroyers were not always able to do.


외국의 군대에서는 TD라는 테마의 변형이 상당한 성공을 거두기도 하였다. 2차대전기 및 직후에 독일 및 소련은 다수의 무포탑 전차엽병 돌격포(구축전차)를 생산하였는데, 이는 기존 전차의 설계를 기반으로 강한 화력과 효과적인 장갑, 생산상의 편의성이라는 장점을 결합한 것이었다. (이러한 전투차량은 때때로 TD로 불리워 지기도 하나, 미국의 TD와는 설계상으로나 교리상으로나 매우 다르다.) 독일과 소련의 구축전차는 기반이 된 전차보다 더 기동성이 있지는 않았으나 미국의 TD와 달리 적의 전차와 끝까지 버티어 싸울 수 있었다.


The incentive to revive the tank destroyer weapons system grows proportionally with the rising price of the main battle tank. There might well be a place on the battlefield for a self-propelled weapon that can perform many of the direct-fire missions that do not require the full sophistication of the main battle tank. In recent publications, Richard E. Simpkin has proposed replacing the expensive and vulnerable main battle tank with two smaller and less-expensive types, one being a general purpose fire-support tank and the other a tank destroyer.


TD라는 무기체계를 부활시키는 유인은 주력전차의 가격상승에 비례한다. 주력전차 수준의 정교함을 요구하지는 않는 많은 직접화력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자주무기가 전장에서 활약할 영역이 존재한다. 최근 간행물에서 리처드 E 심프킨은 비싸고 취약한 주력전차를 두 종류의 작고 싼 타입으로 교체할 것을 제안하였는데, 하나는 범용 화력지원 전차이고 다른 하나는 TD이다.


Under what conditions would a modern doctrine analogous to the World War II tank destroyer concept prove successful? Combat experience showed that a single-arm tank destroyer force was ineffective against a combined arms foe. In 1973, however, massed Egyptian antitank elements scored a stunning success in combat along the banks of the Suez Canal, primarily because Israeli doctrine had strayed from the principles of combined arms, with the result that Israeli tanks faced the Egyptian antitank missiles without support.


2차대전기 TD개념과 유사한 현대의 교리가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일까? 실전경험은 TD 단일병과가 제병합동전에 비효과적이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973경 수에즈운하의 제방에서 이루어진 전투에서는 집중된 이집트군의 대전차부대가 놀라운 성공을 거두었는데, 이는 주로 이스라엘의 교리가 제병합동의 원칙에서 벗어난 결과 이스라엘 전차부대가 (다른 병과의) 지원없이 이집트의 대전차미사일을 상대했기 때문이었다.


In cases where the enemy is not so obliging as to send out unsupported tanks, the same effect must be produced by breaking up the enemy’s combined arms team. As noted in an earlier chapter, this tenet was first recognized in World War I: “Tanks unaccompanied by infantry cannot achieve desired success; they must be supported by infantry, who alone can clear and hold ground gained.“ Moreover, “If the tanks succeed in penetrating the line, the [friendly] infantry must hold out and concentrate all their efforts on stopping the advance of the enemy’s infantry, while the hostile tanks are dealt with by our artillery.“ The World War II tank destroyers focused their efforts solely on stopping tanks, but current doctrine maintains that in antimechanized operations, the “first dictum is to destroy the combined arms integrity of the enemy at all levels while keeping the combined-arms integrity of your force intact." Thus, the first precondition for any revival of the tank destroyer concept is that tank destroyers must be closely integrated with the other arms. The tank destroyer veterans of World War II would urge that tank destroyer elements must be made organic to the division. A tank destroyer unit held at the corps or army echelon must be a combined arms force in its own right.


적이 (다른 병과의) 지원없이 전차를 보낼정도로 친절하지 않은 경우에는, 적의 제병합동병력을 흩어놓는 방법으로 같은 효과를 만들 수 있어야 한다. 앞선 장에서 기재한 바와 같이, 이러한 원리는 1차대전에서 처음으로 인식되었다. "보병을 수반하지 않은 전차는 기대한 성과를 거둘 수 없다; 전차는 단독으로 특정지역을 청소하고 장악할 수 있는 보병의 지원을 받아야 한다." 또한 "전차가 (적의 저항)선을 돌파하는데 성공하면, 아군포병이 적 전차를 상대하는 동안 아군보병은 적 보병의 전진을 정지시키기 위한 노력에 지속적으로 전념하여야 한다." 2차대전기 TD는 그들의 노력을 전차를 정지시키는데만 집중하였으나 현재의 교리는 대기계화전에서는 "최우선 금언은 아군 제병합동군의 통합성을 손상없이 유지하면서, 모든 수준에서 적 제병합동군의 통합성을 파괴하는 것이다"라고 규정한다. 따라서 TD개념의 부활을 위한 첫번째 전제조건은 TD가 다른 병과가 긴밀하게 통합되는 것이다. 2차대전기의 TD 베테랑들은 TD부대가 사단의 유기적인 일부가 되어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하였다. 군단이나 군 수준에서 TD부대는 스스로 제병합동군의 형태로 조직되어야 한다.


A second precondition would be the provision of the infantry with adequate organic antitank and direct-fire support weapons. Otherwise, it would once again prove difficult to withdraw tank destroyers from the line for the purpose of massing them against major tank attacks.


두 번째 전제조건은 적절하고 유기적인 방법으로 대전차 및 직접화력지원 무기로 보병을 대비시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주공 전차부대를 막기 위해 전선에서 TD를 철수시켜 집결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이 다시금 증명될 것이다.


The tank destroyer must mount a weapon superior to that of the tanks it will face and should be armored about as well as a tank. For any armored fighting vehicle to be completely effective as an antitank weapon, it must be able to trade blows with the enemy. The German and Soviet experience shows that both a revolving turret and superior mobility can be sacrificed to gain firepower and armor protection.


TD는 상대하게 될 전차보다 우월한 무기를 장비하여야 하고, 적어도 전차 수준의 장갑을 갖추어야 한다. 어떤 장갑전투차량이 완벽하게 대전차무기로 효과적이기 위해서는 적과 포화를 주고받을 수 있어야 한다. 독일과 소련의 경험은 화력과 장갑보호를 위하여 회전포탑과 우월한 기동성을 희생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Another precondition would be the ability to develop operational and tactical intelligence that will allow tank destroyer elements to be emplaced prior to the enemy’s mechanized attack. The World War II tank destroyers learned that elements not on hand when the enemy attack commenced did not arrive in time to affect the tactical outcome.


또다른 전제조건은 적의 기계화부대의 공격에 앞서 TD를 배치할 수 있도록 작전적으로나 전술적인 수준에서 첩보를 발전시킬 수 있는 능력이다. 2차대전기 TD는 적의 공격이 시작될 때 수중에 없는 부대는 전술적으로 성과를 거둘 수 있는 시간내에 도착할 수 없다는 것을 배웠다.


Any tank destroyer revival must include doctrinal provisions for the use of tank destroyers in secondary roles when massed enemy armor is not a threat. The value of tank destroyers in secondary missions during World War II was beyond question. As weapons grow in sophistication and cost, it is increasingly unlikely that any army could afford to field large specialized antitank elements that can perform no other functions in battle.


TD가 부활한다면 교리에 적의 집중된 기갑부대의 위협이 없을 때 수행될 2차적인 역할에 대한 규정이 포함되어야 할 것이다. 2차대전중 2차적 임무(보병지원 및 간접포격)에서 TD의 가치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무기의 정교함과 비용이 증가함에 따라 어떠한 군대도 전투에서 다른 역할을 할 수 없는 전문적인 대전차부대를 대량으로 내보낼 여유가 없게 되었다.


Finally, the successful reintroduction of a tank destroyer arm would require that higher commanders understand and accept the capabilities and limitations of tank destroyer forces. The best means of ensuring the development of rapport between the tank destroyers and the higher commander would be to make the tank destroyer unit an organic part of the formation with which it will go to war. Above all, it must not be forgotten that suecessful armored operations are conducted by combined arms forces, and that any attempt to counter them must involve the employment of tank destroyers as one part of a combined arms team.


마지막으로, 성공적인 TD병과의 재도입은 상급지휘관이 TD병과의 능력과 한계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을 필요로 한다. TD와 상급지휘관 사이에 친밀한 관계를 확실하게 발전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TD부대를 전쟁에 투입될 편제의 유기적인 일부로 만드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제병합동군에 의하여 실시되는 기갑부대의 작전이나 이를 상대하기 위한 시도는 TD를 제병합동군의 일부로 다루어야 성공적일 수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Even if the tank destroyer concept is never revived, the tank destroyers of World War II should not be forgotten, for they dealt telling blows to the armies of the Axis nations. On battlefields ranging from Tunisia to Luzon, tank destroyers were a highly valued asset, whether employed on directfire, indirect-fire, or antitank missions. The tank destroyer program also made a psychological contribution to the war effort by reducing the unreasonable fear of the tank that permeated all ranks and branches in the early days of the war. This victory of the mind was accomplished through a bold and convincing insistence that the tank, too, had its vulnerabilities. Even on the few occasions when technologically superior panzer forces assailed American arms in strength, the presence of tank destroyers helped curb the panic that had swept away earlier victims of the blitzkrieg.


만일 TD개념이 결코 부활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2차대전기 TD는 추축국의 군대에 결정타를 먹였다는 점 때문에 잊혀저셔는 안된다. 튀니지에서 루손섬에 이르는 전장에서 TD는 직접화력지원, 간접화력지원, 대전차 임무 모두에서 매우 가치있는 자산이었다. TD 프로그램은 또한 전쟁 초기에 모든 계급과 부서에 침투되었던 비합리적인 전차에 대한 공포를 감소시키는 데 심리적으로 공헌하였다. 정신적인 승리는 전차 또한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대담하고 설득력있는 주장을 통하여 달성되었다. 비록 드문 경우에만 기술적으로 우월한 전차부대가 상당한 숫자로 미국의 군대를 공격하였으나, TD의 존재는 전격전의 초기 희생자를 휩쓸었던 공황을 억제하는데 도움을 주었다.


When viewed in the context of the overall American war effort, the U.S. Army’s tank destroyer program represented a reflexive response to the stark threat posed by mechanized warfare. Like the human body’s reaction to sudden danger, the tank destroyer reflex was neither perfectly coordinated nor fully thought out. In many respects, it tended toward excess. However unmethodical and misguided the tank destroyer response may have been, in 1942 it was far preferable for the U.S. Army to overreact to the armored threat than to ignore the tank or to assume that it could not be defeated. The damage done to the American military effort by diverting tank destroyers to secondary missions and inactivating surplus battalions was minimal compared to that which might have been caused by the absence of any antitank program whatsoever. Seek, Strike, and Destroy ultimately failed as a doctrinal concept, but the tank destroyers themselves created success where it counted most - on the decisive battlefields of World War II.


전반적인 미국의 전쟁노력의 맥락에서 볼 때, 미군의 TD 프로금은 기계화전에 의한 냉혹한 위협에 대한 반사적인 대응에 해당하였다. 갑작스러운 위험에 인체가 반응하는 것과 유사하게, TD는 완벽하게 조정되거나 사려깊은 것은 아니었다. 많은 관점에서 보아, 그거은 과잉반응이었다. 그러나 TD라는 대응이 비조직적이고 오도된 것이었다고 하여도, 1942경에는 미군이 전차를 무시하거나 전차를 패퇴시킬 수 없다고 가정하는 것보다는 과잉반응을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였다. 대전차프로그램이 어떤 것이건 간에, 그게 없었던 것과 비교하면  TD를 2차적인 임무에 전환하거나 여분의 대대를 작전에 투입하지 않음으로써 미국의 군사역량에 미친 손해는 아주 적었다. 찾고, 공격하고, 파괴한다 (라는 TD의 교리는) 교리적인 개념으로는 궁극적으로 실패하였으나, TD 그 자체는 성공이 가장 기대되었던 2차대전의 결정적 전장에서 성공을 만들었다.


1 2 3